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함흥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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함흥철
(咸興哲)
1956년 모습
개인 정보
로마자 표기 Ham Heung-Chul
출생일 1930년 11월 17일
출생지 일제강점기 조선
사망일 2000년 9월 11일(2000-09-11)(69세)
사망지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
국가대표팀 기록‡
연도 출전 (득점)
1954-1965 대한민국 42 (-58)
지도자 기록
연도 팀
1972.6~12
1974-1976
1978-1979
1982-1985
1989-1990
1991-1992
대한민국
대한민국
대한민국
할렐루야
유공 코끼리 2군 감독
유공 코끼리 고문

‡ 국가대표팀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00년 9월 11일 기준임.

함흥철(咸興哲, 1930년 11월 17일 ~ 2000년 9월 11일)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골키퍼였다.

국가대표팀 경력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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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는 42경기에 국제 경기에 출전하여 58골을 실점하였으며, 1956년 AFC 아시안컵과 1960년 AFC 아시안컵 우승 멤버이기도 하다. 그 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맡아서 1972년 메르데카컵, 박스컵과 1976년 하계 올림픽 예선, 1978년 아시안 게임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. 1954년 FIFA 월드컵 명단에도 들었지만, 벤치 멤버였다.

지도자 경력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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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82년 할렐루야에서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하였으며[1] 그 후 1983년 한국 프로축구 원년 리그 우승을 하였으며 최초 감독상 수상의 영예도 함께 가져갔다.

1989년 말 유공 코끼리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[2] 1992년 기술고문직을 수행했다. 1991년 6월 29일 경기 종료 후 본인(함흥철)의 소속팀(유공)이 패하여 3연패를 기록하자[3] 당시 주심이었던 이상권 심판을 폭행한 혐의 때문에 같은 달 30일 서울 중부경찰서로부터 불구속 입건됐고 1991년 7월 22일 축구협회로부터[4] 1년 자격정지됐으며 이외에도 1960년 올림픽 예선 당시 심판을 구타한[5] 사건의 주동자였고 1971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 경기에서 주심이 조흥은행 감독에게 주의를 주자 옆에서 심판을 때린 전적이 있을 정도로[6]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.

2000년 9월 11일 설악산 등반 중 추락하여 사망했다.

수상 내역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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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수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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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

감독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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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민국 할렐루야

감독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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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민국 할렐루야

각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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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1. ↑ “함흥철씨 할렐루야 감독으로”. 경향신문. 1982년 3월 6일.[깨진 링크(과거 내용 찾기)]
  2. ↑ “유공 2군 감독에 함흥철씨”. 경향신문. 1989년 11월 8일.[깨진 링크(과거 내용 찾기)]
  3. ↑ “심판폭행 咸興哲(함흥철)감독 입건”. 조선일보. 1991년 7월 1일. 2024년 2월 24일에 확인함.
  4. ↑ “스포츠 게시판”. 조선일보. 1991년 7월 22일. 2024년 2월 24일에 확인함.
  5. ↑ “不祥事(불상사)로中斷(중단)”. 조선일보. 1960년 5월 1일. 2024년 2월 24일에 확인함.
  6. ↑ “朝興銀(조흥은) 咸(함)코치懲戒(징계)”. 조선일보. 1971년 12월 5일. 2024년 2월 24일에 확인함.

외부 링크

[편집]
전임
대한민국 박병석
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
1972년 6월 16일 - 1972년 12월 20일
후임
대한민국 민병대
전임
대한민국 최영근
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
1974년 11월 17일 - 1976년 5월 13일
후임
대한민국 문정식
전임
대한민국 최정민
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
1978년 3월 2일 - 1979년 3월 28일
후임
대한민국 장경환
전임
김정남
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대행
1992 시즌
후임
박성화